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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와 가라오케의 등가교환

디마드 2025. 12. 25. 16:59

​인간의 존엄성이란 얼마나 가벼운가.

고작 소고기 몇 점에 나의 저녁을 통째로 저당 잡혔다. 수영장 모임의 회식 날, 수입산도 아닌 '사장님 엄선 한우'라는 말에 나는 이미 영혼의 도장을 찍었다.
​60대 어르신들의 자식 자랑과 돈 자랑이 육즙과 함께 테이블 위를 굴러다닌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말이야...",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문장들 사이로,

나는 기계적으로 집게를 놀리며 소고기를 입에 넣는다.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등심의 고소함은 황홀하지만, 귀로 들어오는 자랑질의 소음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이 고기는 내 자존감을 씹어 삼킨 대가니까.

​배가 차오르자 재앙이 시작됐다. 2차는 7080 가라오케란다. 가기 싫다는 비명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젊은 친구가 같이 가야지!"라는 권유에 나는 다시 한번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따른다.

​가라오케의 문이 열리는 순간, 내 코를 찌른 건 세월의 먼지와 담배 찌든 냄새였다. 곰팡이 핀 벨벳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자니, 저 멀리서 한 할아버지가 엇박자로 열창을 시작하신다. 옆자리 동료는 영특하게도 벌써 술 취한 척 고개를 떨구고 '수면 모드'에 들어갔다. 사회적 지능이 높은 놈. 나는 그럴 용기도 없어 멀뚱히 앉아 탬버린만 만지작거린다.

​문득 거울에 비친 내 꼴을 본다. 만약 내가 BTS의 뷔처럼 생겼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쯤 이 눅눅한 지하 구석이 아니라, 은은한 조명이 흐르는 와인 바에서 우아한 사람들과 삶의 미학을 논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현실의 나는 늘어가는 흰머리와 주름을 훈장처럼 단 노신사들 사이에서 "노래 한 곡 해!"라는 성화에 시달리는, 그저 그런 중년일 뿐이다.

​젊었을 땐 용기가 없어 사랑 고백 한 번 제대로 못 했고, 이제는 거울 보는 게 겁이 나 자신감마저 상실해가는 처지. 앞으로의 삶은 더 비참해질까? 내 미래도 결국 저 마이크를 잡고 놓지 않는 노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공포가 엄습한다.

​분위기가 최고조(그들만의)에 달했을 때, 나는 대충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매섭다. 찬바람이 불자 입안에 남아있던 소고기의 기름진 맛이 비로소 비릿하게 느껴진다.

​"여긴 어디지."

​길을 잃은 건지, 인생의 방향을 놓친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한참을 걸었다. 주머니 속의 차가운 만년필을 만지작거린다. 오늘 밤, 이 찌질하고도 서글픈 소고기의 맛을 기록해야겠다. 그래야 이 비참한 저녁이 조금은 '쓸만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