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리뷰

네가 어떤 기분인지 내가 잘 안다고 ? ...시덥잖은 위로 하지마

디마드 2024. 2. 24. 21:34

전쟁터에서 총상을 입은 군인이 고통을 호소할 때, "힘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 고통 내가 잘 알아. 별거 아니니 참아봐. 나는 총알을 세 방이나 맞은 채로도 잘 살아가고 있어" 하고 말하며 자랑하듯 자기 몸에 박힌 총알 자국을 보여준다면 과연 위로가 될까?

오히려 더 많은 총알이 자신의 몸을 관통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고작 이런 고통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런 것 위로가 아니라, 격려도 아니다. 호러일 뿐이고 "당신말이 맞아요. 옳아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자기도취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하나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거나 아니면 극도로 외로운 사람일 게다. 

류시화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실직을 하고 막막해하는 젊은이에게 "나를 봐. 나는 평생을 직장 다니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글을 쓰면서 잘 살아왔어."라고 하거나, 자녀가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인 부모에게 "잘 될 거예요. 어떠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몰라요. 나는 학교 다닐 때 낙제했어도 작가가 되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조언이 아니라 이야기의 초점을 교묘히 자신에게로 돌리는 자기 과시이다....

그럼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까?

조언을 하지 마라.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상대방의 상태를 말해 주어라. 

"오늘 네가 얼마나 힘든지 느껴진다."라거나, "네가 더 강해지는 것 같아"라고...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이 주인공이 되어야 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 주고, 들어 주고, 동반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존중은 그 사람이 고통을 극복하는 치유가 된다. 

한때 회사를 도저히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팀장이랑 직책이 너무 무거웠다. '나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팀원들 모두를 어떻게 책임지라는 거야... 왜 나를.. 나한테 이런 짐을 넘기는 거지'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고, 역시나 업무 협의 당사자들과 협상이 순조롭지 않았고, 팀원들도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는 나를 향해 불만이 가득했다. 

하루하루 괴롭고 피하고만 싶은 순간이었다. 위로와 조언이 필요했다. 직장 동료, 선배들은 하나같이 힘들겠지만 누구나 겪는 과정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나 때는 이보다 더했다는 위로인지 자기 과시인지 귀에 들어 오지도 않는 일화를 들추어낸다. 

사표를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나의 일방적인 넋두리였지만, 친구는 한참을 묵묵히 듣고선,

"참 힘들었겠다. 친구야.~~~ " 

만약에, 이 친구마저 "야! 뭐 그 정도로 그러냐. 나는 상사에게 조인트도 까였고, 프로젝트도 몇개 말아먹었어.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승진해서 잘 다니고 있잖아. 힘내고 참아라. 친구야.." 했다면, 당장 전화기를 던져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타인의 얘기를 경청하지 않는다. 자기 얘기를 더 하고 싶어 한다. 분명 상대방이 시작한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어떻게든 연결해 마무리햐려고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무슨 고민이 있는지 어떤 걸 말하려고 했는지를 잊어버린다. 아니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이 들면 외롭다. 

10~20대처럼 누군가를 정열적으로 사랑할 수도 없다. 

가슴 설레는 감정을 가질 수 없다. 

현실의 고통과 이를 피할 안락함을 찾으려 한다. 

내 얘기를 경청하고 마음 깊이 함께 아파할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고 경청하는 연습을 한다면,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에도 관심과 지지를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겠는가...